2021년 12월의 나에게 예약 메일을 보낸다.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낸다.

2021년은 알차게 보냈는지.
2021년은 행복하게 보냈는지.
2021년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웠는지
2021년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 해를 보냈는지
2021년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였는지

아직 하지 않았다면 남은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보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올 해 끝맺음을 지을 순 없지만 일단 시작부터 하자고.

2021년 12월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답장을 하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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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비교하면서 모티베이션을 얻는 것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사실 내가 가진 재능은 한계가 있는데, 내 옆자리의 저 천재놈이랑 비교하면 내 자괴감만 들뿐.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재능러는 그냥 쭉쭉 나아가게 그냥 두면 된다.

언제나 나의 라이벌은 어제의 나, 그리고 오늘의 나.

이 정도면 해볼 만한 싸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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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딘가 망가져 있다.
남들은 다 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한다.
남들은 쉽게 상상하며 떠올리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능하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뇌의 문제인가. 그래서 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많지는 않지만 여러 번의 연애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마
내가 아닌 타인이 가장 소중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희생이라던가 손해라던가 알면서도 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타인이 나보다 소중해서 한 것은 아니었을 터.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나의 마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식어갔다.
진심으로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사해하는 마음을 '먹고' 싶었던 것 같다.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을 부정하고
억지로 나의 사상을 변화시키려 하고
이에 대한 대화를 거부하는 순간 내 영혼은 더는 그와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세상의 전부라는 그들의 말을 단 한 번도 신뢰한 적이 없다.
난 한 번도 그런 마음을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가 알려주었다.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라며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존재하지도 않을 일시적인 기분.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순간의 마음.
너무나도 쉽게 부서져 버리는 마음.

그렇기에 서로가 아주 잘 맞는 사람끼리 만나거나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과 배려를 강요한다면 깨어져 버리는 관계
그것이 연인. 그것이 연애.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날 이만큼 사랑해주지 않는 거야
따위는 그저 사랑받고 싶은 욕심일 뿐 애초에 사랑이 아니다.
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할 수가 있나.
사랑은 변한다. 그 크기가 변하거나 아니면 다른 형태로.
더 많이 사랑하거나 그 사랑이 사라지거나.
호기심으로. 성욕으로. 책임감으로. 혹은 그리움으로.
애초에 종류도 다양하다. 연인과의 사랑이. 부부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 자식의 사랑이 모두 다르듯.
사람마다도 그 형태도 다르다. 그렇기에 실패도 없다.

단지 서로가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하니
아무리 노력해도 헛바퀴만 돌 뿐.
그렇게 지쳐갈 뿐.
그렇게 더는 노력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
그때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일 뿐.
실패가 아닌 그저 작아질 뿐. 그저 소멸했을 뿐.
애초에 맞물려 있지 않아서, 시작도 되지 않은 사랑에 실패는 없다.

사랑.
그것은 영원도 아니고.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고.
다만 다양한 형태로
그저 존재할 뿐인 마음.

천주교식 전도가 어찌 보면 사랑의 정석 아닐까.
절대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절대 사랑을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주의 사랑으로 삶을 대하고 (묵묵히 사랑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궁극적으론 그 삶의 자세에 감화되어 천주교로 인도하는 것 (궁극적으론 내 사랑에 감동하여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
※ 모든 천주교인이 저렇다는 건 아니고 내가 신학생(신부지망생)에게 들었던, 그가 말하던 전도 방법. 그리고 난 현재 무교.

다만, 한 가지 함정이 있다면...
내가 누굴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것...😥

사랑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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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탓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그렇게 행함으로 인한 나의 심경의 변화를 이야기 하기.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 이러면 내가 너무 곤란하잖아)

도움을 청할 때는 요구 사항을 명확하게 설명
(일의 전후 사정, 어떤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실질적으로 어떤 장점이 있는지, 등등등)

상대방에게 훈장질, 훈수질 보다는 본인이(상대방)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정말 해야하는것인지 본인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유도.
(Q : 난 왜 늘 할일을 미룰까? A : 왜? 그 일을 미루지 않고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 왜 그 일을 미루고 싶지 않은지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유도)

커피 : 악마의 유혹(..? 마케팅에 당해버렸네). 쓰다. 쓰지만 매일 마시게 된다. 잠이 달아난다고 한다. 한국인이 밥과 김치 다음으로 많이 섭취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는 그보다 더...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존재. 대부분 검다. 그치만 누군가는 마시지 못한다.

우유 : 단백질 공급원.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는다. 소젖. 인간이 왜 소젖을 먹지... 버터나 치즈 등으로 변신 가능.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존재(커피 딸기 바나나 초코 등등...). 개인적으론 그 자체보다 맛첨가한걸 선호. 쉽게 상한다. 유통기한이 짧은편

책상 : 공부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일터이기도 하고 놀이터이기도 하고... 어렸을때는 돈 벌 준비를 하고, 그에 따라서 커서는 돈버는곳. 어렸을 때 오래 함께 했을 수록 커서도 함께 할 확률이 높... 대부분 비슷한 모양

의자 : 대부분의 현대인이 의식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곳. (의식없을 땐 침대) 그래서 최대한 편한것을 찾게되고 편할수록 비싼것. 하지만 허리에 좋지 않지... 책상은 사물의 무게를, 의자는 휴먼의 무게를 지탱

시계 : 시간을 가리키는 사물.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존재. 비싼건 대부분 아날로그. 다양한곳에서 기능을 대신하고 있어 시계 자체가 없는곳도 상당수. 인간이 시간을 계획적으로 쓸 수 있게 해준 도구. 누군가에게는 부를 자랑하는 도구

거울 :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자신을 약간의 왜곡을 더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사물. 본인의 자존감을 보여주는 사물(누군가에게는 자신감의 형태로 누군가에게는 자괴감 및 컴플렉스의 형태로). 사용하기에 따라서 자신감을 갖게 도와주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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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동안 거금을 들이고 산 노트북과 블로그를 방치했길래,

마음을 먹고 노트북을 들어, 이곳에 접속해 본다.

그래도 종종 한 번씩 글을 쓰는 습관을 들여보려고.

 

 

내 나이 38. 조금 있으면 불혹이라고 불릴 나이.

이제 와서야 조금씩 철이 드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모바일 게임에 현질을 하고 싶을 때마다 현질을 하는 대신 주식을 사기로 했던 것이 벌써 수백만 원이 되었다.

행복한 잉여시간을 잉여하게 보내는 것 대신, 잉여한 시간을 쪼개어 운동을 한 게 벌써 반년 이상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 남은 잉여한 시간을 조금 더 쪼개어 글을 써보기로 한다.

 

철없던 10대, 20대, 30대 초중반.

남는 게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잉여롭게 보내왔던 시간이 이제 와서 새삼 아깝다고 느껴진다.

이 정도는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라며 잉여하게 써버린 현질한 돈들이 이제 와서 새삼 아깝다고 느껴진다.

10년 후에도 아 그때라도 할 걸이라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불혹을 앞둔 이 나이에 새삼스레 다시 마음을 잡아본다.

 

반년 이상 운동하면서 이제라도 조금씩 근지구력을 회복하고 있다.

운동하면서 새삼 예전에 즐겨 먹었던 것들을 먹으려 할 때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어본다.

순간의 재미를 위해, 랭킹을 위해, 가상공간에서 조금 더 강해지기 위해 쏟아부었던 돈들을 훗날의 가치를 위해 투자를 해 본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선택을 위한 포기이다.

내 미래의 건강을 위해 (행복했던) 잉여한 시간을 포기하고 운동에 투자하고, 이제 와서는 정신수양에 조금 더 투자하고, (앞으로는 스킬에도 더 투자할 생각이다.)

쾌락의 맛, 천국의 맛을 포기하고, 심심하지만 건강한 음식들에 투자하고,

순간의 재미, 가상공간에서의 경쟁, 승리를 포기하고 미래의 가치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겠으나, 이제라도 깨달은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한다.

 

이제 와서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건강을 위해 행복한 잉여시간과 천국의 맛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순간의 재미와 경쟁심을 포기했다.

 

본디 갖고 있던, 갖고 있지 않던,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빚은 늘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성숙해지기도 하지만,

신체 능력과 뇌의 활동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젊었을 때 하지 않았던 노력은 시간이 지난 후 이자까지 셈하여 노력해야 한다.

 

나는 결혼을 위해서 나의 자존감과 행복을 버렸으며,

잃어버렸던 자존감과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결혼생활을 버렸다.

그리고 이자로 정신적인 고통과 이혼남의 타이틀을 얻었다. - 법적으로는 결혼한 적이 없지만.

누군가의 결혼생활은 행복하겠으나, 나의 결혼생활은 그랬다. 결혼을 대가로 행복과 자존감을 포기해야 하는...

물론 결혼하기 전엔 몰랐지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라오기 마련.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자신이 포기해야 하는 것을 잘 고려해보기 바란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스스로가 판단해서 자신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혹시라도 모를 이 글을 읽을 사람들과,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서 이 글을 남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도 잘 타먹고 그래서 생각해보는 빈부격차
사실 빈부격차는 예전 신분제도사회에서도 계속 있었었고, 지금 현재도 계속 있는 상황이다.

다만,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는 '누구나가 다 노력만 하면 그 노력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 공부 열심히 하고 노력하면 상류층으로 갈 수 있다' 라는 씨알도 안먹히는 개소리를 하고 있다. 한때는 그랬다... 한때는 맞는말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한국전쟁 이후 민주주의의 걸음마를 뗄 무렵, 기반 시설도 없어 그런 기반 시설들을 깔기 위해 중요한것은 '노동력' 이었다. 그래서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면 정말 노동력을 투입한 만큼의 돈을 벌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이때도,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의호식하는 무리들은 있었다. 미디어가 발달하지 못해서 티가 잘 안났을뿐...

사실 미국에서도 현재는 개소리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 누구나가 노력만 하면 노력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는것이 왜 개소리인가를 보면, 우선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속도보다 자본으로 돈을 버는 속도가 더 빠르다.
집값, 땅값(이쪽은 거의 세습에 가깝다. 세습받은 집, 땅이 오르는거지..), 주식, 한때는 비트코인 등... 종자돈이 두둑하고 종목을 잘 고르고 운이 좋으면 노동력을 투입해서 버는 돈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가져간다.
예를 들자면 2019년 1월 1일에 약 주당 37000원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면... 현재 약 6만원 1년 2개월 만에 약 60%의 수익률을 얻는다. 근데... 현대 한국인의 노동자가... 1년만에 연봉이 60% 오른다? 어림없는소리..
비율도 비율이지만, 자본의양으로 인한 격차가 더 심하다. 100주를 샀다면 1년 2개월에 230만원을 버는 것이지만 1만주를 샀다면 2.3억을 버는 것이다. 돈이 돈을 낳는다. 그리고 보아라 한국 사회의 부자 순위에서 자수성가형 부자가 얼마나 되는지...

그럼 미국은 자수성가형 부자가 많으니 잘되는거 아니냐? 라는 소리를 할 수 있지만... 실상은 미국의 빈부격차가 한국의 빈부격차보다 더 심하다. 그리고 이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헛점은 우리나라도 적용되고 있다... 즉 우리나라는 밑에 서술할 미국형 헛점과... 한국형헛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이른바 헬조선이 맞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중산층이 두텁던 시절, 그리고 우리나라가 중산층이 두텁던 시절 (대략적으로 미국은 60~70년대 쯤이고 우리나라는 70~90년대 IMF 이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시기는 대부분 '기술' 이라는것이 매우 중요한 시기는 아니었다. (물론 이때부터 기술을 잘 다져온 기업들이 지금의 월드클래스 거대기업들이지만...이쪽은 애초에 논외대상이다. 이들이 지금의 빈부격차 상위 0.01% 이내 아닌가...) 솔직히 사장의 노동능력 자체도 고만고만했고, 게으른 사장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들을 보좌하기 위해 부사장이 있었고, 이 부사장도 게을러지면서 그들을 보좌하기 위한 전무, 상무, 부장, 그들을 보좌하기 위한 과장, 대리 등.. 일의 양들이 피라미드 처럼 분배되어있었다. 그래서 일자리도 많았고...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산업은 자동화가 되기 시작했다.
로봇들이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IT 기술의 발달로 우편이 거의 없어졌으며, 인터넷 쇼핑과 택배의 등장으로 동네장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업형 마트와 편의점의 등장으로 동네 슈퍼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제는 로봇이 커피를 타주는 카페도 생겼다. 중산층이 점점 실직하고 하층민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노동력은 있으나, 일을 할 곳이 없어졌다.

남은 일자리는 또 어떠한가.
산업은 점점 창의력, 신기술개발 등이 중요해졌다. 창의력을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신기술개발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과 교육이 중요해졌다. 다양한 경험을 하기위해서는 역시 자본이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교육을 위해서는 역시 또 자본이 필요하다. 중요한 일자리는 자본을 투입받은 인재들 위주로 차지하게 되었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이전하고, 정보화시대로 이전하면서 점점 인간의 일자리는 줄어들게 되었다.

능력있는 1명이 능력없는 10명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낸다. 그렇게 능력없는 10명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능력있는 1명이 10명분의 임금을 가져간다. (한국 사회에서는 임원의 이야기지 직원 나부랭이한테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직원 나부랭이 3명중 2명이 퇴사하고 1명이 3인분의 일을 하지만 1명분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100명은 주어진 일을 하고, 1명의 엘리트가 신기술 개발의 성과를 냈다. 그렇게 1명의 엘리트가 수십인분의 임금을 받게 된다. 그렇게 빈부격차가 점점 더 심해진다. 상위 0.01%와 1%의 빈부격차는, 상위 1%와 10%째의 빈부격차보다 심하다.
1%와 10%째 의 빈부격차는 10%와 50%의 빈부격차보다 심하다. 이게 현재 사회의 빈부격차이다.
과거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차이는 1980년 기준 1.1배에서 2014년은 1.7배까지 늘어났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195088) 2020년인 지금은 더 늘어났겠지.. 그렇게 소수의 버는사람들은 더 벌고 다수는 못벌게 되어간다.

2020년 1인가구 중위소득은 175만 7194원이다. 즉 1인가구의 절반은 175만원 보다 못번다. OECD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75~200% 의 소득을 가진 집단을 중산층이라고 한다. 2020년 대한민국 4인가구의 중위소득은 474.9만원이다.
(http://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3&CONT_SEQ=350365&page=1)
그렇다면 4인기준 월 356.1만원~949.8만원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중산층이다. 1인기준은... 131.8만원~351.4만원의 소득을 가진 사람이 중산층이다. 1인기준 131.8만원...... 중산층....... (더이상은 생략한다. .......)
그렇게 중산층이 무너져있다.

그럼 1명의 엘리트가 되면 되지 않는가. 라고 할 수 있지만. 그도 만만치 않다.
예전에는 재산만 상속했다면.... 요즘은 능력도 상속한다.
학습능력이 평범한 사람이 5시간 동안 독학하는것보다 돈을 발라서 쪽집게 과외선생에게 1시간 과외받는것이 효율이 좋다. 나이먹고 수년간 독학영어공부하는것보다 어렸을때 영어유치원, 유학을 보내는게 효과가 더 좋다. 그렇게 사교육이 발달했고, 부모의 재산에 따라 교육의 불평등도 심화되었다. 엘리트는 노력을 해서 되는것이 아니라 자본력으로 길러내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렇게 능력도 상속된다. 노력을 해서 올라갈 수 있는 신분의 파이는 너무 적다.
그렇게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산층 혹은 그 하층으로 떨어진다.

내가 어렸을때의 중산층은 나름 부족함 없이 잘 사는 집안이었는데, 과거는 어느정도 중산층과 상류층의 공생이었다면, 지금의 중산층은 상류층의 착취대상이다. 요즘 중산층일부는 빈민층과 큰 차이 없는사람들도 많다. (위를 보면 알듯 1인 가구 기준 131.8만원의 소득도 중산층이다.) 과거 중산층은 상류층과 (최상류 말고...) 어울려 살았다면 이제는 빈민층과 어울려 산다. 그렇게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이 커져간다.

능력을 상속받은 사람들의 삶도 순탄치는 않다.
땅을 물려받은사람은 땅을 팔아서 돈을 벌고, 집을 물려받은 사람은 그 집에 살면서 적당히 벌면서 살면 된다.
하지만 물려받은게 능력밖에 없는 사람들은 본인이 그 능력을 활용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자본을 만들 수가 없다.
건물을 물려받은사람은 세입자들에게 자본을 착취하고, 밭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노동력을 착쥐하면 되는데, 능력을 상속받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착취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그들은 상속받은 자산을 평생 착취하면서 평생일을 하고, 여유가 없어지면서 불행해진다. 대부분의 경우 십년을 일해도 내돈만으로 내집을 마련하기 힘들다. 열심히 일을 해서 집주인에게 월세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한다. 건물주 아들은 본인의 여가시간이 많다. 가난한 집안의 대기업다니는 아들보다 건물주 아들이 행복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우자로서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


자본력이 새로운 신분이 되었고, 그리고 그 신분은 세습이 된다. 결국 신분사회의 단점을 없애지도 못했고, 신분을 세습받은 이들 중 많은이들이 불행해졌다.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 노력으로 인한 신분상승은 없다. 노력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 확률은 더 떨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ㅈ빠지게 공부해서 금수저 밑에서 착취당하며 금수저를 더욱 부유하게 만든다.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보여지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신(新)카스트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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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적... 그러니까...모든 버릇을 만들어갈무렵
나는 가정사에 의해 집에있는 시간이 많았고, 덕분에 한참 남들과 대화하며 살아갈 시기에 책을 벗삼아 놀았다.
그리고... 남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PC통신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내 할말을 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듣고, 들으면서 리액션과 말을하는것에 버릇이 들어있다.

이 버릇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 자꾸 타인의 말을 잘라 먹으려 해서 참으로 골치가 아프다. 고치려 노력을해도 어느새 타인의 말을 자르는 나를발견하게 되어 흠칫흠칫 놀란다.

듣는 연습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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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색


- 판도라의 상자 -


판도라의 상자가 원래는 항아리이나 오역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이 사색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는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뚜껑을 열었더니 그 속에서 온갖 재앙과 재악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고,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그리스 신화의 상자이다. 뜻밖의 재앙의 근원을 말하기도 한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태초의 세상에,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여자인간을 만들라고 했고, 판도라라는 여자인간이 탄생하였다. 제우스는 판도라의 탄생을 축하하며 상자를 주었고,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경고를 주었다. 판도라는 신 프로메테우스의 동생과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상자를 열어보았고 상자안에는 온갖 욕심, 질투, 시기 그리고 각종질병 등이 상자에서 빠져갔고, 평화로웠던 세상은 금세 험악해졌다. 위에서 나왔다싶이 상자안에는 결국 악은 다 빠져나가고 희망만이 남게되어 이것이 뜻하는 것은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꼭 한줄기 희망은 남아있다 를 뜻한다. 

출처 : 위키백과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 튀어나온 재앙과 재악은 지금 현실에 있다. 근데 위 이야기에 따르면 희망은 판도라가 나오기전에 뚜껑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한줄기 희망이 남아있으려면 판도라가 희망까지 나오고 난 뒤에 뚜껑을 닫았어야 했다. 이런 생각으로 썼던게... 예전에 있다.


20130327 오늘의 사색 일부 (...)

판도라는 뚜껑을 도로 닫았다. 그러나 이미 온갖 불행이 인간들 사이로 퍼져 나간 뒤였다. 다만 상자 밑바닥에 무언가 자그마한것이 잔뜩 웅크린채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그 뒤로 인간들은 갖가지 불행에 시달리면서도 희망만은 고이고이 간직하게 되긴 개뿔 다 튀어나간 불행은 우리를 실질적으로 괴롭히지만 희망이란놈이 나가지 않고 은톨이짓을 하는 바람에 우리가 희망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있는거잖아 ㅡㅡ... 

여튼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말도안되는 논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을것 같다.

그럼 다른 것을 고민해보자.


2. 판도라의 상자는 온갖 재앙과 재악을 넣어놓은 상자이다. 근데 왜 그런 상자에 희망이 들어있었을까.


절망적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이 쓸데 없이 희망을 가지는것이 재앙이다. 라고 해석하면 너무 우울해진다.


혹자는 인간들이 어떠한 재앙과 재악 사이에 있어도 이겨낼 수 있도록 희망을 넣어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널리 알려진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희망이 빠져나오기 전에 판도라가 뚜껑을 닫아버렸으므로, 그 희망은 나오지 못했다. (아.. 그래서 지금 나라꼴이 이모양...)


3.

우선 판도라에 대해서 살펴보자

pan(πάν) : 모든  +  dora(δώρα; 뜻은 δώρο 인듯?) : 선물

모든 선물 이라는 뜻이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인간 세계에 내려보낸 최초의 여성으로, 지상으로 내려오기 전 신과 여신들로 부터 온갖 선물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제우스가 그 유명한 판도라의 상자를 준다. 절대로 열지 말라면서 (...)

말이 열지 말라는것이지 이쯤되면 꼭 열어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 이후는 다들 아는대로...)


그럼 대체 제우스는 왜 판도라에게 그딴 선물을 주었을까.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와 결혼을 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다들 아는대로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가, 캅카스의 바위에 묶인 채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면 회복되는 형벌을 당하는 신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캅카스로 형벌을 받으러 끌려가기 전에 동생에게 제우스가 주는 선물을 받지 말라고 당부하였으나, 아프로디테로부터 '아름다움과 교태, 거부할 수 없는 욕망' 을 받은 판도라를 거절하지 못하고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즉, 판도라의 탄생과 상자는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 때문에 빡쳐서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 함정카드 였던것이다.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어쨌던 판도라는 신이 인간세계에 내려보낸 최초의 여성이라는 점과 '인류의 불행' 의 시작 이라는 점에서 성경에서 나오는 하와(혹은 이브)와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 인간의 욕심/호기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


파우스트 해설서에서는 희망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희망은 악이다' 라고 해석하였다. 즉, 희망을 가지지 않으면 현재를 행복하게 살 수 있을텐데, 현재를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힘든 삶을 살면서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에도 더 먼 미래를 위해 고통스런 삶을 살다가 죽는다 는 의미이다. - 영원히 고통받는 인간... - 


희망고문을 생각해보면 희망이 마냥 좋은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나쁘기도 하다.

어떻게 해도 절망적인 결과만 기다리는 상황속에서 주어진 작은 희망으로 인해 오히려 더 괴롭게 되는 상황이 바로 희망고문

희망이 아예 없으면 모든 기대를 포기하고 깔끔히 손을 뗄 수 있지만,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그 가능성에 모든것을 걸고 어떻게든 절망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리고... 이것이 잘되면 기적이고, 안되면 희망고문이다.




아... 뭔가 글을 쓰면서 계속 생각을 해도 계속 모순점이 있다.


이쯤되면 결론은 딱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희망은 마냥 좋은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갖 재앙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 안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으며,

희망이 상자안에서 나오기 전에 판도라가 상자의 뚜껑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고문 안에서 영원히 고통받고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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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색

너무 많은것이 디지털화 되어있다는것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그 디지털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일정관리. 메모. 알람 등등.. 나의 일상에서 아날로그로 생활하던 수많은 것들이 이미 디지털화 되어있었다.

하지만, 독서와 필기는 여전히 아날로그가 좋다.
물론.. 디지털이 편한건 알고있지만...

그리고
추억 역시 아날로그가 좋다..

디지털화 되어있는 추억은, 너무나도 쉽게 노출이되고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것 같다.
실수한번에, 혹은 바이러스나 사이트폐쇄 등 기타 다른이유로 인해 그 추억이 사라진다는것은 정말 가슴아픈일이다.

물론 아날로그로만 추억을 간직한다는것도 어려운일이다.
이사 또는 보관의 어려움으로 아날로그 추억 또한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독서, 필기, 추억만큼은 디지털의 편리함이 뛰어넘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아날로그에 존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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