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딘가 망가져 있다.
남들은 다 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한다.
남들은 쉽게 상상하며 떠올리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능하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뇌의 문제인가. 그래서 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많지는 않지만 여러 번의 연애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마
내가 아닌 타인이 가장 소중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희생이라던가 손해라던가 알면서도 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타인이 나보다 소중해서 한 것은 아니었을 터.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나의 마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식어갔다.
진심으로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사해하는 마음을 '먹고' 싶었던 것 같다.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을 부정하고
억지로 나의 사상을 변화시키려 하고
이에 대한 대화를 거부하는 순간 내 영혼은 더는 그와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세상의 전부라는 그들의 말을 단 한 번도 신뢰한 적이 없다.
난 한 번도 그런 마음을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가 알려주었다.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라며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존재하지도 않을 일시적인 기분.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순간의 마음.
너무나도 쉽게 부서져 버리는 마음.

그렇기에 서로가 아주 잘 맞는 사람끼리 만나거나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과 배려를 강요한다면 깨어져 버리는 관계
그것이 연인. 그것이 연애.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날 이만큼 사랑해주지 않는 거야
따위는 그저 사랑받고 싶은 욕심일 뿐 애초에 사랑이 아니다.
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할 수가 있나.
사랑은 변한다. 그 크기가 변하거나 아니면 다른 형태로.
더 많이 사랑하거나 그 사랑이 사라지거나.
호기심으로. 성욕으로. 책임감으로. 혹은 그리움으로.
애초에 종류도 다양하다. 연인과의 사랑이. 부부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이. 자식의 사랑이 모두 다르듯.
사람마다도 그 형태도 다르다. 그렇기에 실패도 없다.

단지 서로가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하니
아무리 노력해도 헛바퀴만 돌 뿐.
그렇게 지쳐갈 뿐.
그렇게 더는 노력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
그때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일 뿐.
실패가 아닌 그저 작아질 뿐. 그저 소멸했을 뿐.
애초에 맞물려 있지 않아서, 시작도 되지 않은 사랑에 실패는 없다.

사랑.
그것은 영원도 아니고.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고.
다만 다양한 형태로
그저 존재할 뿐인 마음.

천주교식 전도가 어찌 보면 사랑의 정석 아닐까.
절대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절대 사랑을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주의 사랑으로 삶을 대하고 (묵묵히 사랑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궁극적으론 그 삶의 자세에 감화되어 천주교로 인도하는 것 (궁극적으론 내 사랑에 감동하여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
※ 모든 천주교인이 저렇다는 건 아니고 내가 신학생(신부지망생)에게 들었던, 그가 말하던 전도 방법. 그리고 난 현재 무교.

다만, 한 가지 함정이 있다면...
내가 누굴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것...😥

사랑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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